시선의 시작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리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등을 돌린 순간을 포착하는 일.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여러 점의 뒷모습을 남겼다.
소녀의 뒷모습
《Standing Girl, Back View》의 소녀는
푸른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다.
양말 위로 살짝 드러난 맨살,
고개를 살짝 돌린 그 자세에는
기다림 같기도, 거절 같기도 한
양가적 감정이 담겨있다.
마치 누군가를 향해 돌아설 듯 말 듯,
그 모호한 순간을 그림에 담았다.
여인의 뒷모습
《Crouching Nude
in Shoes and Black Stockings》에서는
웅크린 자세로 등을 보이는 여인을 그렸다.
검은 스타킹과 신발만이 유일한 장식인 채,
맨살에는 연한 살굿빛 물감이 번진다.
단 몇 개의 선으로 잡아낸 등의 곡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
뒷모습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정면의 얼굴보다 때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레가 그린 여인들의 등은
때로는 수줍고, 때로는 당당하다.
하지만 그들의 자세에는
도망가는 사람의 황급함이 없다.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고요한 순간이 담겨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인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거절이면서 동시에 초대다.
실레는 이 모순적인 순간을 표현했다.
내면의 질문
당신의 뒷모습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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