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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야기

수묵별미: 물과 먹, 그 사이에서 본 세계

by innarte 2025. 1. 31.

전시 정보

전시명: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
기간: 2024.11.28 ~ 2025.2.16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품수: 148점


전시장에 들어서자

종이 위로 먹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물과 먹이 만나는 자리마다

시간은 멈춰 있었다.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아득하게 번지는 경계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였고,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였다.

 

이응노, <구성>, 1973

이응노 구성, 문자 추상을 활용한 한국 현대미술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
이응노, 구성, 197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촬영: ‘수묵별미’ 전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품 설명

이응노의 작품은 문자 추상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제시했다.

세계 여러 문자의 형상을 차용해

만들어진 기호들은

서로 얽혀 유기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감상

작품 속 기호들은

알 수 없는 문자가 되기도 하고

생명력 넘치는 추상이 되기도 한다.

의미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바라보았다.

그러자 작품 속 여백에서 유쾌함이 흘러넘쳤다.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치바이스, <연꽃과 원앙>, 1955

치바이스 연꽃과 원앙, 중국 수묵채색화의 대표작, 중국미술관 소장
치바이스, 연꽃과 원앙, 1955. 중국미술관 소장. 촬영: ‘수묵별미’ 전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품 설명
짙은 먹빛 연잎 위로

선홍빛 연꽃이 도드라진다.

물 위를 노니는 한 쌍의 원앙은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감상
원앙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과

연잎의 정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다.

먹빛의 농담과 강렬한 붉은빛의 대비는

자연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서세옥, <사람들>, 1988

서세옥, 사람들, 198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촬영: ‘수묵별미’ 전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alt":"서세옥 사람들, 동양화의 필묵 기법을 활용한 한국 현대미술 작품").

작품 설명
서세옥은 '人'의 형태를 통해

인간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종이에 뿌리내린 먹빛의 선들은 서로 연결되고,

때로는 흩어지며 새로운 군상을 만들어낸다.

 

감상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듯하다가도

금방 흩어질 듯한 모습.

그 모습이 꼭 사람을 닮았다.

만남과 이별, 함께 있지만

또 홀로 서 있는 존재.

먹이 만든 유기적 선들이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완충하듯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 작품을 보면 그들 속에 있는

나를 비추게 된다.

 

홍석창, <결실>, 1990

홍석창 결실, 수묵을 활용한 기둥 형태의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홍석창, 결실, 199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촬영: ‘수묵별미’ 전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품 설명
거대한 기둥처럼 보이는 형상은

수세미 열매를 확대해 표현한 것이다.

먹빛과 붉은 기운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감상
단순한 구성이지만 강렬하다.

그림 속 열매는 무겁게 매달려 있는 듯했고,

붓질은 멈추지 않는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붉은 색감은 화면 속에서 강렬한 균형을 이루며

생명의 기운을 전한다.


루칭릉, <설역고원 1>, 2018

루칭릉 설역고원1, 중국 현대미술 작품, 눈 덮인 산맥의 웅장함을 표현
루칭릉, 설역고원1, 2018. 중국미술관 소장. 촬영: ‘수묵별미’ 전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품 설명
눈 덮인 산의 웅장함과 광활함을

절제된 먹빛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개인의 내면과 자연의 장엄함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감상

설원 속 산은 침묵으로 서 있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검고 하얀 선들은

마치 바람의 흔적 같다.

작가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눈 덮인 산의 웅장함이

그대로 종이 위로 스며들었다.

여백은 바람과 구름을 품었고,

먹은 산의 강인함을 품었다.


이 전시는 물과 먹이 빚어내는

경계와 여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을 이야기했다.

그 대화는 종이 위에서 완성됐지만,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수묵이 주는 울림은

마음에 깊게 스며들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