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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야기

이대원 전시 후기 | 덕수궁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by innarte 2026. 9. 29.

색이 이렇게 많은데도 어지럽지 않았다.
빨강과 노랑, 파랑과 초록이
한 화면 안에서 부딪치듯 놓여 있는데
이상하게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보고 있으면
마음 안쪽까지 무엇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원, 〈담〉, 1986 ❘ 외교부 소장, 주미국 대한민국대사관 ❘ 직접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초기의 정물과 풍경부터
말년의 농원과 설경까지 따라가다 보면
한 화가가 수십 년 동안
자신만의 색과 선을 어떻게 쌓아 올렸는지 보인다.
전시 후반부에 이르면
그림을 바라본다기보다
풍경 안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전시 정보

전시명《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장소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간2026. 8. 6. ~ 11. 8.
관람 시간화·목·금·일 10:00~18:00
수·토 10:00~21:00
휴관매주 월요일
관람료2,000원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촬영사진 가능, 영상 불가
관람 동선1층 1부 → 2층 2·3부 → 1층 4부
작품수작품 12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 

 
전시는 이대원의 작업을 네 시기로 나눈다.
배우되 갇히지 않다.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
쌓아올리니 자유롭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Ⅰ. 배우되 갇히지 않다

화려한 색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대원, 〈정물〉, 1955 ❘ 개인 소장 ❘ 직접 촬영

첫 전시실부터 색이 눈에 들어왔다.
산호빛 배경 앞에 청록색 화병 하나,
노란 꽃과 주황빛 감 두 알.
색 하나하나만 보면 꽤 강하다.
그런데 한데 놓이니
오히려 화면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대원, 〈집〉, 1962 ❘ 개인 소장 ❘ 직접 촬영

〈집〉 앞에서는 나비파의 그림이 떠올랐다.
벽과 나뭇가지와 꽃점이
한 장의 무늬처럼 겹쳐 있다.
노란 창, 붉은 문, 검은 담.
화려한 색을 이렇게
어우러지게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전시를 다 보고 초기 작품을 다시 떠올리니
후기의 화려한 색채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미
색을 고르고 함께 놓는 방식이 남달랐다.
 

Ⅱ.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

전통을 가져오되 그대로 반복하지 않다

이대원, 〈달빛〉, 1966 ❘ 한솔문화재단 ❘ 직접 촬영

푸른 밤하늘 아래
보름달과 대나무, 바위.
소재만 보면 옛 그림의 죽석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대나무 잎은 먹 대신 여러 빛깔의 선으로,
바위 위 이끼는 작은 색점으로 바뀌어 있다.
수묵화의 붓질을 유화로 옮겨 온 셈이다.
 

이대원, 〈담장〉, 1965 ❘ 서울미술관 ❘ 직접 촬영

〈담장〉은 더 가까이 봐야 한다.
흰 벽돌 하나하나에
분홍, 청록, 노랑, 파랑의 작은 색이
촘촘히 박혀 있다.
 
색은 하나로 섞이지 않는다.
저마다 제 빛을 지키며
하얀 담을 미세하게
반짝이는 표면으로 바꾼다.
보는 각도마다 다른 빛을 내는 자개처럼.
 
이대원은 평생 나전 칠기와 자수 같은
우리 공예품을 곁에 두고 아꼈다.
색실을 섞지 않고 나란히 놓는 자수,
어두운 바탕 안에 빛을 품는 나전.
그 원리가 유화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그리고 이 작은 점과 선들이
뒤로 갈수록 이대원의 자연 전체를
채우기 시작한다.
 

Ⅲ. 쌓아올리니 자유롭다

산이 기뻐하면 이런 모습일까

이대원, 〈산〉, 1978 ❘ 개인 소장 ❘ 직접 촬영

3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림 앞에서 자주 멈췄다.
그중 〈산〉을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우와" 소리가 나왔다.
 
산은 분명 크고 무거운 대상인데
이 그림에서는 무게보다 기쁨이 먼저 왔다.
보라와 파랑, 초록으로 이루어진
산의 표면 위로
빨강과 노랑, 청록의 작은 색점이
끊임없이 튀어 오른다.
산에 있던 점은 나무로,
나무에 있던 점은 다시 하늘까지 번진다.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산이 기뻐하면 이런 모습일까?
 

색으로 가득 찬 가을

이대원, 〈농원〉, 1984 ❘ 개인 소장 ❘ 직접 촬영

이대원의 그림을 보는 내내
풍성하다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붉은 사과가 매달린 나무,
노란 들판, 보랏빛 산.

짧은 붓질로 가득 채운 노란 들판과
그 한가운데 매달린 붉은 사과가 특히 좋았다.
가을의 풍요가
열매의 개수가 아니라 색 자체에서 느껴졌다.
 

빛을 데생하는 사람

이대원, 〈나무〉, 1987 ❘ 국립현대미술관 ❘ 직접 촬영

19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이대원의 점은 점점 길어진다.
짧은 색점이 색선이 되고,
그 선들이 나무와 들판 전체를 움직인다.
 
이 그림 옆에서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는
이대원이 빛을 그리기보다
"빛을 데생한다"고 했다.
 
그림을 다시 보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나무줄기와 들판을 따라 빠르게 그은
빨강, 파랑, 노랑의 짧은 선들이
형태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로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색을 칠했다기보다
선으로 빛의 방향을 그어 놓은 느낌.
그 선들에서 이상할 만큼 생기가 전해졌다.
 

왜 이 겨울은 슬프지 않을까

이대원, 〈설경〉, 2001 ❘ 서울시립미술관 ❘ 직접 촬영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 남은 그림 가운데 하나다.
 
눈 내린 풍경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쓸쓸하지 않았다.
겨울 그림에는 대개
고요함과 외로움이 함께 따라오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런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흰 눈 사이로
빨강과 파랑, 노랑의
줄기와 색점이 계속 드러난다.
화면은 하얀데 식어 있지 않다.
오히려 밝고 충만하다.
 
왜 이 겨울은 슬프지 않을까.
그 생각을 품은 채 작품 설명을 읽었는데
눈 사이의 원색이 겨울을 가라앉히지 않고
밝게 채운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그림 앞에서 먼저 느낀 감정과
전시가 건네는 말이 정확히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
전시 제목이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Ⅳ.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참 바라보면 괜찮아질 것 같은 산

이대원, 〈산〉, 1982 ❘ 한솔문화재단 ❘ 직접 촬영

마지막 전시실에서 만난
〈산〉 앞에도 오래 머물렀다.
 
눈을 그린 그림은 아닌데
처음 본 순간부터 눈 내린 겨울 산이 떠올랐다.
푸른 산을 따라
수많은 흰 점과 작은 색들이 흩어져 있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 앞에 서면
시선이 조금씩 화면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위로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풍경 안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뜨거운 풍요

이대원, 〈농원〉, 1994 ❘ 한솔문화재단 ❘ 직접 촬영

화면 전체가 노란빛으로 타오른다.
하늘과 들판과 산의 경계도
무수한 색선 속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형태가 사라진다기보다
모든 것이 색으로
가득 찬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노랑의 향연.
그리고 뜨거운 풍요.
앞서 본 가을보다
더는 비워 둘 곳이 없을 만큼 색이 차 있다.
 
처음에는 이대원의 그림을 보며
색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에 이르면
그 말로는 조금 모자라다.
색이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색 자체가 풍경이 되어 있었다.
 

이대원, 〈농원〉, 1995 ❘ 한솔문화재단 ❘ 직접 촬영

마지막 전시실의 제목은 전시 제목과 같다.
평생의 벗이던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 김원룡은
이대원의 그림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시는 이 말을
이대원의 환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바친
벗의 헌사라고 소개한다.
이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그림이 밝고 화려해서
붙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끝까지 보고 나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이대원 역시 화가이자 화랑 운영자, 교육자로
여러 역할과 책임을 안고 살았다.
전시는 이대원의 그림에
슬픔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슬픔을 몰라서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고.

그렇게 같은 나무와 산, 연못과 들판을
오래 바라보며
이대원은 자신의 색과 선을 하나씩 쌓아 갔다.
 
그래서 가로 5미터에 이르는 〈농원〉 앞에 서면
풍경을 멀리서 바라본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나무와 풀, 연못과 색들이
화면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만 같다.
그 앞에 선 사람도
잠시 그 과수원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다시 보고 싶은 전시

전시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시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겨울이라고 꼭 쓸쓸할 필요는 없었다.
산이라고 꼭 묵직할 필요도 없었다.
한 사람이 오래 바라본 자연은
끝내 이렇게 환해질 수 있었다.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슬픈 일이 없다는 말이라기보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고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빛과 색이
남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대원, 〈과수원〉, 1976 ❘ 개인 소장 ❘ 직접 촬영